나토는 정말 종이호랑이가 되었나
미국이 나토(NATO)에 방위비 분담 압박을 가하는 장면은 이제 익숙한 뉴스 풍경이 되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동맹 탈퇴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나토가 유명무실하다”고 압박, 결국 지난 6월 2035년까지 NATO 회원국들이 GDP의 5%까지 국방비를 늘린다는 합의를 이끌어내었습니다.
사실 트럼프의 관점을 이어받은 미국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나토는 그야말로 이빨 빠진 호랑이 이미지가 굳어졌습니다. 물론 일정 부분은 유럽 국가들이 실질적인 안보 위협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맞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마타도어에는 유럽 동맹국들이 내심 억울해하는 기색도 역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 속에서 주목받지 않았던 하나의 흐름이 하나 있습니다. 유럽이 조용히, 그리고 나름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시그널입니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나토 이노베이션 펀드(NATO Innovation Fund, NIF)’입니다. 해당 펀드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물살을 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이전부터 설계된 구상이었습니다. 2021년 6월 브뤼셀 정상선언문에서 이미 나토 동맹국들은 ‘DIANA’라는 국방혁신 액셀러레이터와 함께 민군 겸용 기술에 투자하는 전용 펀드 설립에 합의합니다. 침공은 실행 속도를 높였을 뿐, 방향은 그보다 앞서 이미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NIF는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NIF는 단순한 전쟁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기술 패권 시대에 동맹의 생존 방식을 재정의하고 민간의 혁신을 어떻게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올 것인가에 대한 유럽의 해답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바로 이 나토 이노베이션 펀드가 어떻게 설계되었고, 무엇에 투자하며, 한국의 정책 펀드에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시작: 전쟁 이전에 이미 결정된 것들
NIF의 뿌리를 찾으려면 2019년 12월 런던 정상회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당시 동맹국들은 나토의 미래 방향에 대한 폭넓은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었으며, 이 흐름이 2021년 ‘NATO 2030’이란 아젠다로 구체화됩니다. 그해 2월 각국의 국방장관들은 신흥 및 혁신적 기술(Emerging and Disruptive Technologies, EDT) 전략을 승인했고, 같은 해 6월 14일 브뤼셀 정상선언문에서 북대서양 방위 혁신 액셀러레이터 (Defence Innovation Accelerator for the North Atlantic, DIANA) 출범과 나토 이노베이션 펀드 설립이 공식화됩니다. 세부 교섭 과정은 공개자료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침공 이전에 이미 정상급 합의가 완료되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1차 문서로 입증됩니다.
나토가 이 시점에 기술 혁신을 안보정책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나토는 처음부터 EDT를 “전력 증강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취약점의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AI, 자율 시스템, 양자, 바이오, 우주, 극초음속, 신소재, 차세대 통신 등은 군의 효율과 복원력을 높이는 동시에, 적이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공격 표면이기도 합니다. 기술을 확보하는 것만큼, 기술적 취약점을 관리하는 것도 동맹의 과제가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