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하버드 자퇴생들이 세운 반도체 스타트업 에치드(Etched)는 지난 6월 30일 스텔스 모드를 끝내고 첫 제품을 공개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소후(Sohu)라는 이름의 ASIC 칩을 개발하는 회사로 알려졌지만, 새로 공개한 A0는 칩 하나를 단독으로 공급하는 제품이 아닌, 칩과 서버 랙,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은 풀스택 시스템이었습니다. 회사는 2022년 설립 이후 $800Mn 자금을 조달했고, 기업가치 $5Bn에 직원 40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고 함께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추가 펀딩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콰이어(Sequoia)와 제인스트리트(Jane Street)가 라운드를 이끈다는 내용이었는데, 여기서 특이점이 하나 눈에 띕니다. 두 라운드의 기업가치가 서로 다릅니다. 세콰이어가 이끄는 라운드는 기업가치 $10Bn, 제인스트리트가 이끄는 라운드는 $20Bn이라는 언급입니다. 같은 회사, 거의 같은 시점인데 두 가격표가 정확히 두 배 차이 납니다.
이 장면은 지난달 머코(Mercor) 공동창업자 브렌든 푸디(Brendan Foody)가 저격했던 ‘세콰이어 스캠’의 구조를 그대로 소환합니다. 세콰이어가 한 라운드를 두 개의 트랜치로 쪼개 투자하면서 높은 쪽 숫자만 세상에 알리고, 창업자들은 그 숫자가 전체 라운드에 대한 기업가치인 것처럼 직원들과 초기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동일 라운드 동일 밸류에이션은 벤처 투자 시장의 1인 1표제와도 같은 암묵적 규칙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시대도 끝나가는 것일까요? 동일 라운드 기업가치의 숫자가 둘로 갈라지기 시작한 이 현상, 과연 무엇이고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의 회사, 두 개의 가격
푸디가 겨냥한 구조는 심플합니다. 선도 투자자는 낮은 기업가치로 큰 지분을 확보하고, 다른 투자자들은 거의 같은 시점에 높은 기업가치로 작은 지분을 삽니다. 그리고 세상에 발표되는 숫자는 높은 쪽입니다. 이 구조가 성립하는 이유는 세 참여자의 이해가 정확히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탑티어 투자자는 낮은 진입가로 즉각적인 장부이익을 얻고, 창업자와 기존 투자자는 실제 가중평균 가격보다 훨씬 높은 헤드라인 숫자를 손에 쥐며, 뒤늦게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들어온 투자자들은 인기 회사의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립니다.
핵심은 이 구조가 밸류에이션의 성격 자체를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원래 한 라운드의 밸류에이션은 그 시점에 시장이 합의한 하나의 청산 가격이었습니다. 듀얼 밸류에이션 라운드에서는 그 숫자가 둘로 분리됩니다. 자본이 실제로 무겁게 실린 가격과, 세상에 전시되는 가격이 따로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밸류에이션이 시장의 판단을 압축한 측정값이 아니라, 회사가 선택적으로 내거는 마케팅 재료가 되는 것입니다.
올해 2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에 따르면 AI 기반 IT 헬프데스크 스타트업 서벌(Serval)은 25년 10월 기업가치 약 $220Mn로 시리즈 A 라운드를 마칠 당시만 해도 연 환산 반복 매출 약 $10Mn 수준의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 세콰이어는 $400Mn 미만의 기업가치로 지분을 확보하는 비공개 거래를 마치고는 며칠 뒤 $75M 규모 시리즈 B 라운드로 기업가치 $1B을 찍고는 회사가 유니콘 지위에 올랐다고 발표합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장부상 기업 가치가 $600M 늘어난 것입니다. 이후 임직원들은 $1.2B 기준으로 보유 주식을 팔았습니다. 두 개의 가격표가 벌어진 폭만큼, 이 회사가 실제로 어떤 가격에 거래되었는지를 아는 사람과 헤드라인만 보는 사람 사이의 간극도 벌어진 셈입니다.
AI 고객 리서치 스타트업 아루(Aaru)의 사례는 구조를 한층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2024년 3월에 설립된 이 회사의 최근 라운드에서 레드포인트는 라운드의 대부분을 $450Mn 기업가치로 투자하고는 일부 소액 자금을 트랜치로 나눠 $1Bn 기업가치로 투자하면서 다른 공동 투자자들은 $1Bn 기업가치로 투자하도록 설계합니다. 창업한 지 1년 반 지난 아루는 이러한 전략 덕분에 단숨에 유니콘 기업이라는 헤드라인을 얻었지만, 라운드에 투입된 자본의 대부분은 사실 그 절반 이하의 기업가치였습니다.
카타(Carta)에 따르면 이런 형태의 거래는 지난 12개월 사이 약 20건이 알려졌고, 특히 지난해 4분기부터 빈도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다수 투자자들은 최근까지 한 라운드 안에서 리드 투자자가 자본을 서로 다른 두 밸류에이션으로 쪼개는 딜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관행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지금인가
먼저 리드 투자자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지난 VentureEDGE에서 다룬 대로 벤처 자본은 소수의 초대형 펀드로 빠르게 집중되고 있습니다. 단일 펀드 규모가 $1B을 넘는 초대형 펀드들이 시장 전체 자본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반면, $100M 미만 소형 펀드로 가는 몫은 계속 줄고 있습니다.
자본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을 정하는 힘도 함께 집중됩니다. 일반 시장의 시리즈 A 규모조차 최근 1년 새 60% 가까이 뛰었고, 인기 AI 스타트업의 시리즈 A는 그 몇 배에 달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런 라운드를 리드하고 후속 투자까지 감당하려면 펀드 자체가 수십억 달러 규모여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인기 AI 스타트업의 초기 라운드를 이끌 수 있는 곳은 소수의 브랜드 펀드로 좁혀지고, 이들이 라운드에 들어온다는 사실 자체가 회사가 값을 치르고 살 만한 신호가 됩니다.
창업자도 이유는 있습니다. 시장 경쟁은 격화되고 AI 인재 확보전은 갈수록 치열해집니다. 이 국면에서 창업자에게는 속도와 기업가치가 동시에 중요해집니다. 반복되는 펀드레이징은 제품에 쏟을 시간을 갉아먹고, 낮은 헤드라인은 인재와 고객 앞에서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리드 투자자가 내미는 제안이 달콤해집니다. 낮은 트랜치로 전략적 앵커 투자자를 확보하는 동시에 높은 트랜치로 유니콘 헤드라인을 얻고, 그것을 한 번의 라운드로 끝낼 수 있다면, 창업자에게 이 거래는 손해 볼 것 없는 윈윈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거래의 대가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청구된다는 데 있습니다. 실제 혼합 가치가 헤드라인보다 낮아도 회사는 다음 라운드를 헤드라인 위에서 조달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다운라운드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헤드라인이 오르면 임직원 스톡옵션의 행사가격도 함께 올라 직원들이 누릴 기업가치의 몫은 오리혀 줄어들게 됩니다. 호황일 때는 드러나지 않던 이 비용은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서는 순간 한꺼번에 표면화됩니다.
언제나 반복되는 장면입니다. 2015년 유니콘 붐의 끝자락에서도, 2021년과 2022년의 과열기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2015년에는 높은 헤드라인 밸류에이션을 지키기 위해 Ratchet과 우선청산권 같은 보호 조항을 끼워 넣은 구조화 라운드가 유행했습니다.
2021년에는 SPAC과 크로스오버 자본이 만들어낸 진기한 구조들이 넘쳐났지만, 금리가 방향을 틀자 대부분 다운라운드 및 상장 철회로 귀결됐습니다.
시장이 과열될 때마다 밸류에이션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구조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그 구조에서 실제로 돈을 번 것은 초기의 소수뿐이었다는 점은 매번 같았습니다. 듀얼 밸류에이션 라운드가 이번 사이클의 진기한 구조라면, 지금의 신호 이익을 챙기는 쪽과 나중의 비용을 떠안는 쪽이 각각 누구인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세콰이어의 반박, 혹은 인정
푸디의 직격에 세콰이어 파트너 션 맥과이어(Shaun Maguire)가 직접 답했습니다.
그는 ‘세콰이어 스캠’이라는 명명이 부당하다고 반박하면서도, 구조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7년간 다섯 번 정도 있었던 일이며, 인기 있는 AI 회사에 대해 다른 투자자들이 세콰이어가 지불하려는 가격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지불하려는 상황에서, 회사를 함께 키우는 세콰이어의 역할과 단순히 자본을 공급하는 투자자들을 분리하려다 보니 짧은 간격을 둔 두 트랜치가 생긴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부정한 지점은 없으며, 벤처캐피털은 반복되는 게임이라 사람들을 오도할 이유도 없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이 논리를 한 겹 벗겨 보면, 세콰이어가 낮은 가격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결국 자신의 이름값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자본만 가져오는 투자자와 다르므로, 회사에 빌려주는 신뢰와 신호의 대가로 더 낮은 가격을 적용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구조적인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과거에 톱티어 VC의 브랜드 가치는 암묵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가격의 정당성을 보증했고, 브랜드는 가격 안에 녹아 있었습니다. 대신 이사회 선임권 등 거버넌스를 선점하며 영향력 측면에서 차별화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제 듀얼 밸류에이션은 그 브랜드 가치를 자본과 분리해 별도의 할인폭으로 명시적으로 가격화합니다. 세콰이어의 반박은 스캠이 아니라는 방어인 동시에, 자신들의 평판이 이제 자본과 구별되는 하나의 상품이 되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진술이기도 합니다.
동일 라운드 동일 밸류 시대는 끝날 것인가
당사자들이 동의하면 무엇이 문제겠느냐는 반문은 타당합니다. 합법이고, 자발적이며, 직접 참여한 세 주체의 이해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거래입니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렇게 작동합니다. 그러나 합의가 정당하다는 것과 그 결과가 투명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이 구조는 본질적으로 정보 격차 위에 서 있습니다. 머코의 창업자가 이 구조를 ‘스캠’이라고 부른 이유도 분명합니다.
“My gain is your loss”
문제는 구조의 합법성이 아니라,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비대칭을 회사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 현상은 창업자의 영향력이 정점에 이른 AI 시대의 일시적 일탈일 수 있습니다. 인기있는 회사가 넘치고 자본이 줄을 서니 창업자가 펀딩에서 택갈이까지 설계하는 국면이라는 해석이고, 이 해석이 맞다면 시장의 열기가 식으면서 구조도 자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대형 VC가 자신의 영향력을 더 정교하게 자본화하는 구조적 변화의 초입일 수 있습니다. 이름값에 할인을 붙일 권리가 관행으로 굳는 순간, 가격 결정력은 오히려 소수의 선도 투자자에게로 넘어갑니다. 창업자가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이, 실은 대형 VC가 판을 다시 장악하는 과정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에치드가 $10B과 $20B을 동시에 들고 나온 장면은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이번 사이클에서 인기있는 스타트업의 기업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전시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입니다. 밸류에이션이라는 숫자가 측정의 결과가 아닌 홍보의 매개로 전락할 때, 그 숫자를 신뢰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은 7월 21일 유료구독자들을 대상으로 발행된 글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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