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italEDGE Acquired — 기업을 인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치펀드, 인수창업, 마이크로PE, 많이 들어는 봤는데 한국에서도 과연 가능할까요? CapitalEDGE Acquired와 함께 그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케빈 타윌(Kevin Taweel)과 짐 엘리스(Jim Ellis). 1992년과 93년에 나란히 스탠포드 MBA를 졸업한 두 사람은 1995년 7월, 휴스턴의 작은 차량 견인 회사를 약 120억 원($8.5Mn)에 인수합니다. 회사 이름은 로드 레스큐(Road Rescue). 인수 시점 매출 $5.9Mn, 연간 EBITDA $1.5Mn 수준의 나름 현금을 잘 벌어들이는 소기업이었죠.
30년이 지난 2026년 오늘, 이 회사는 연간 매출 약 15조 원($10Bn), 직원 3만 명, 전 세계 2억 3,000만 명이 이용하는 글로벌 서비스 기업이 되어 있습니다. 이름은 아슈리온(Asurion). 1995년 투자한 1달러는 2021년 기업가치 기준 5,275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지난 30년간 연 복리 기준 61%의 수익률.
서치펀드 역사에서 단일 사례로 이 정도 성과에 근접한 케이스는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30년 전 인수를 이끌었던 케빈 타월은 아직도 아슈리온의 이사회 의장으로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슈리온의 여정은 현재 진행형인 것입니다.
지난 2026년 5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는 아슈리온 인수 30주년을 맞아 관련 사례를 다시 한번 케이스(E-960)로 정식 발간했습니다. 지난 세대의 인수창업 경험을 나누고 이를 다음 세대에 전파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그 30년의 여정을 압축합니다. 오늘은 1편 — 두 명의 30대 초반 청년들이 어떻게 서치펀드 역사상 최고의 인수창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MBA 졸업 후, 서처 또는 백수
타윌은 캐나다 동부의 인구 18만 명 규모 작은 섬,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출신입니다. 어린 시절 가족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진열대를 채우는 일을 하며 자란 타윌은 몬트리올에 위치한 맥길 (McGill)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엘리스는 플로리다의 이민 1세대 저소득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가족이 양계장을 운영했고, 새벽 5시에 일어나 달걀을 수거한 뒤 학교에 갔습니다. 아버지가 정화조 수리업으로 업종을 바꾼 뒤에는, 한여름에 정화조 안에 직접 들어가 막힌 곳을 삽으로 치우는 일도 했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지만, 4년 만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남의 회사를 자문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은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1년 차이 선후배였습니다. 타윌은 졸업 후 본인의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졸업때까지 창업 아이디어를 찾지 못한 상태였죠. 졸업이 임박한 어느 금요일, 당시 여자친구의 권유로 경영대학원에서 비즈니스 케이스 조교 자리에 지원하게 됩니다. 면접관은 어빙 그로스벡(Irv Grousbeck), 빌 레이지어(Bill Lazier), 짐 콜린스(Jim Collins). 그날 저녁, 타윌은 연봉 4만 달러에 근무 제안을 받고 즉시 오퍼를 수락합니다.
그땐 뭘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냥 임시방편이었죠.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계속 찾아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이 시기 타윌에게 서치펀드는 “플랜 B”였습니다.
서치펀드를 처음부터 진지하게 고려한 건 아니었어요. 창업 아이디어를 못 찾으면 그때 가서나 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어차피 내가 만드는 회사가 아니니까 얼마나 의미가 있겠어’라고 생각했죠.
케이스 조교로 일한지 몇 달 지나지 않아 타윌은 헬스케어 분야 인수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약 20만 달러의 서치 자본을 모았습니다. 타윌의 케이스 조교 계약 기간이 끝날 즈음, 후임으로 들어온 인물이 짐 엘리스였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매일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서치펀드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전 던지기로 정한 직함
엘리스의 케이스 조교 임기가 끝날 즈음, 두 사람은 두 개의 인수 후보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마이애미의 쿠바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작은 관리형 의료보험 사업자 (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HMO), 그리고 다른 한 곳은 휴스턴의 차량 견인 회사 로드 레스큐.
두 사람은 딜의 방향성과 관련하여 다소 특이한 합의를 하게됩니다.
타윌이 마이애미 딜을, 엘리스가 휴스턴 딜을 각자 추진하기로 하되 둘 중 하나가 깨지면 남은 쪽은 딜이 되는 쪽으로 합류한다. 만약 둘 다 클로징이 되면 두 회사 모두 50:50 지분으로 나눠 갖는다.
마이애미 딜이 먼저 깨졌습니다. 타윌은 투자자 빌 이건(Bill Egan)과 함께 매도자를 만나러 갔는데, 사업은 사실상 스페인어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건은 타윌에게 단순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페인어 할 줄 아세요?” 답은 “아니오”. 이건의 결론은 단호했습니다. 이 정도로 현재 경영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사업인데 매각하려는 것 자체가 경고 신호라는 것이죠.
다음 날, 타윌과 엘리스는 멘로파크에 위치한 한 중식당에서 만났습니다. 애피타이저가 나오기 전에 이미 결정을 끝냈습니다. 둘은 로드 레스큐 딜을 50:50 파트너십로 함께 추진하기로 확정합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보스턴 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IM에는 아직 두 사람의 직함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들이 명확한 역할 구분을 선호할 거라 판단한 둘은 공항 게이트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멘토이자 교수였던 그로스벡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파트너가 비슷한 상황에서 회장(Chairman)과 사장(President)으로 직함을 나눠 썼다고 알려줬습니다.
둘은 공항에서 동전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타윌이 회장, 엘리스가 사장. 실제로는 둘 다 공동 CEO로 역할을 했지만, 외부 직함은 그렇게 정했습니다.
딜 클로징 마라톤, 두 달간의 합숙
로드 레스큐의 당시 인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수 가격: $8.5Mn (TTM EBITDA의 약 4.5배)
자본 구성: 자기자본 $3.8 Mn + 중순위 메자닌 $2.0Mn + 선순위 은행 대출
매출: $5.9Mn, 전년비 90% 성장
EBITDA: $1.5Mn
펀딩은 수월했습니다. 현금 창출력과 EBITDA 배수만 보더라도 딜의 매력도는 충분했죠. 타윌은 실제 펀딩은 거의 하루만에 끝이 났다고 회고합니다.
그로스벡은 처음 서치 단계에서는 투자자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대상 기업 인수 단계에서 그에게 투자 참여 및 이사회 합류를 요청하자, 다른 투자자들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배정 물량을 줄여 그로스벡의 자리를 만들어줬습니다. 한 투자자는 그로스벡이 이사회에 들어오는지 확인한 후 곧바로 자금을 송금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딜 클로징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습니다. 선순위 은행 대출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로드 레스큐 매출의 85% 이상이 새롭게 갱신된 2년 이상 계약으로 묶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그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했던 GTE 와이어리스 휴스턴 계약이 아직 갱신 협상 중이었던 것입니다.
타윌과 엘리스는 두 달 동안 매도자 옆에 앉아 GTE 협상을 도왔습니다. 둘은 비용을 아끼기위해 엠버시 스위트 호텔의 방 하나를 함께 나눠쓰며 지난한 협상 과정을 버텼습니다.
짐, 나 10분 먼저 잠들 시간을 줘. 너 정말 코를 심하게 골거든.
둘은 GTE가 어떤 질문을 할지, 기존 경영진이 어떻게 답해야 할지를 약 60페이지 분량의 플레이북으로 정리해 함께 연습했습니다. 1995년 7월, 결국 계약 갱신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딜은 클로징됩니다.
그러자 둘은 곧바로 휴스턴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스탠포드 MBA 졸업생이었지만 준 백수에 가까웠던 두 명이 하루 만에 휴스턴에 위치한 차량 견인 회사의 경영자가 된 것입니다.
1995년 차량 출동 서비스를 인수한다는 것
로드 레스큐(운영 서비스명 Mr. Rescue)는 1987년 약 2억 원의 자본금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휴스턴과 댈러스 자동차 딜러십에 차량 출동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작은 회사였죠. 당시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직접 제공하지 않았기에, 딜러들이 신차 판매 시 출동 서비스를 끼워 차별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회사의 진짜 도약은 한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무선통신 서비스 가입자에게도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회사는 GTE MobileNet에 해당 아이디어를 들고 갔고, GTE는 파일럿 사업을 승인하게됩니다. 다행히 해당 프로그램이 성공하자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며 타 통신사들과의 계약도 이어졌습니다.
1995년 인수 시점 로드 레스큐는 3년 이상 장기 계약을 20건 이상 보유하고 있었고, 70여 개 도시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 중 미국 20대 대도시 중 12개 지역이 커버리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작동 방식은 단순했습니다.
통신사 가입자가 월 3달러 부가 요금을 내거나 특정 요금제에 번들로 포함되어 서비스를 이용
가입자가 도로에서 문제가 생기면 통신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는 자동으로 로드 레스큐 디스패치 센터로 라우팅
견인, 잠금 해제, 연료 배달, 타이어 교체 등 서비스는 회사가 백엔드에서 조율. 통신사는 고객 관계를 유지했고, 로드 레스큐는 운영 플랫폼을 소유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BPO 모델이었지만, 구조적으로는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첫째, 시장이 폭발 중이었습니다. 1993 - 1994년 무선 통신 가입자는 연 45% 이상 성장하고 있었고, 침투율은 여전히 낮아 성장 점재력이 무한대에 가까웠습니다.
둘째, 통신사는 직접 디스패치 서비스를 가져갈 유인이 없었습니다. 24시간 콜센터와 견인 네트워크는 통신사들의 사업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일부 주에서는 도로 위 서비스를 정식 등록된 딜러샵을 통해서만 제공될 수 있도록 규제해 통신사의 직접 진출이 제한적이었습니다. 로드 레스큐는 운영 플랫폼과 필수 라이선스를 모두 갖춘 사업자였던 것입니다.
셋째, 가족 소유 구조가 거래 자체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당시 CEO는 소수 지분을, 그의 아버지인 창업자가 다수 지분을 갖고 있던 구조였습니다. 몇 년간 아버지의 관할 아래 회사를 운영해 온 2세는 이제 스스로의 독립과 회사 매각을 통한 자금 회수를 원하던 상황이었습니다.
M&A의 세계에서 보면 EBITDA 대비 기업가치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당시 매도자였던 가족들에게 850만 달러는 적어도 그들의 세계에서의 만루 홈런에 가까운 성과였습니다. 경쟁 없이 수의계약으로 회사를 매력적인 가격에 인수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GTE 갱신을 기다리며 매도자 옆에서 보낸 두 달의 시간은, 인수 전 사업 운영을 바로 옆에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기존 경영진은 빈틈없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매주 직접 업무를 배정하고, 직접 수백 장의 벤더 수표에 직접 서명을 했습니다.
케빈과 제가 당시 CEO 함께 앉아 있었는데, 월요일이 수표를 끊는 날이었어요. 우리가 ‘이 수표는 32달러 80센트네요’라고 하면 그가 ‘아, 그건 노스다코타 파고의 Ray’s Towing이야’라고 답했는데, 정말 그대로 맞았어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매주 현금을 만들어내고, 확장 가능한 채널을 선점한 회사, 1995년의 로드 레스큐였습니다.
“우리는 무슨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인가?”
인수 직후 두 사람이 이 질문에 답한다면 답은 단순했을 겁니다.
“우리는 도로 위 서비스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그 답이 초기 전략을 결정했습니다. 더 많은 통신사 계약을 따고, 기존 계약에서 침투율을 높이고, 더 많은 콜을 디스패치 네트워크로 흘려보내 플라이휠을 돌리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었죠.
우리 둘이 합쳐 시간이 200%였다면, 그중 150%를 매출 성장에 할당했어요.
엘리스는 거의 전적으로 신규 통신사 계약과 기존 계약 내 침투율 확대에 매달렸습니다. 타윌은 자기 시간을 클라이언트 관리와 운영 관리에 반씩 나누어 썼죠.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시간이 매출 쪽으로 쏠려 있었기에, 운영 쪽은 의도적으로 우선순위가 낮아지는 구조가 됐습니다.
운영 쪽에서 리스크를 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했어요. 콜센터가 열려 있나? 전화를 받고 있나? 고객이 만족하나? 그게 답이 안 나오는 질문들이었어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으니, 두 사람은 가장 원시적인 통제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알람 시계를 새벽 1시·3시·5시·7시로 맞춰놓고, 돌아가며 800번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누군가 받는지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24시간 운영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지만, 그 24시간이라는 게 사실은 휴스턴 텍사스의 작은 방에 큐비클을 놓고 세 명이 번갈아 가며 업무를 보는 것이었죠.
고객 접점에 대한 이해와 함께 두 사람이 진행한 또 다른 작업은 “돈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이었습니다. 경제구조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고객이 정말로 돈을 내는지, 벤더가 정말로 돈을 받는지. 한동안 두 사람이 직접 벤더 수표에 서명했습니다.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무선 산업 자체가 연 45% 이상 성장하던 시기였고, 로드 레스큐는 그 흐름 위에 올라타 있었습니다. “우리는 도로 위 서비스 비즈니스를 한다”는 전략 만으로도 회사는 충분히 잘 굴러가던 시기였습니다.
2년만의 15x 인수 제안, 그리고 거절
1997년, 인수 2년 차에 CUC 인터내셔널이 6,000만 달러(약 870억 원)에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제안해왔습니다. 원금의 약 15배. 두 명의 젊은 인수창업가들에게 인수 2년 만의 해당 제안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자랑스러웠어요. 와, 이게 진짜구나. 누군가가 이 회사에 진짜 큰 돈을 내겠다고 하는구나.
이사회가 열렸습니다. 거래와 협상에 능한 조엘 피터슨(Joel Peterson)은 매각을 권했습니다. 환상적인 결과를 락인하고, 투자자에게 보상을 제공하여 평판을 만들고, 다시 새로운 회사를 찾으면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어빙 그로스벡은 다른 프레임을 제시했습니다.
제가 이 결정을 한다면, 두 사람과 이 사업의 활주로(runway)가 얼마나 남았는지, 그 길을 가는 데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겠어요.
이어서 그로스벡은 두 사람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로드 레스큐라는 회사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는지, 운영하는 게 즐거운지. 답이 “그렇다”라면 왜 굳이 매각하고, 세금을 내고, 또 다른 로드 레스큐를 찾아야 하느냐고 반문해봐야 한다고 했죠.
타윌과 엘리스는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이 회사와 이 산업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그 후로 감정적으로 더 깊이 들어갔죠.
거절 이후, 두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로 위 서비스 한 가지 만으로도 이 사업을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키울 수 있을까?
기존 고객에게 또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처음에 두 사람이 시도한 답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도로 위 차량들을 위한 서비스를 무선 채널 밖으로 가져간다.”
자동차 제조사, 보험사, 신용카드사 등 모두 어떤 형태로든 도로 위 서비스를 자기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로드 레스큐는 비-무선 전담 영업팀을 구성했고, 전 GM 도로 위 서비스 책임자까지 영입했습니다.
문제는 이익 구조였습니다. 무선으로 제공되는 도로 위 서비스는 월 3달러 부가 상품, 즉 통신사의 이익 센터이자 로드 레스큐의 반복 고마진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오프라인 채널에서는 같은 서비스가 로열티 혜택으로 번들되어 비용 센터로 취급됐습니다. 이들 고객은 비용을 낮추기를 원했지 더 많이 팔리길 원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스의 회고:
디트로이트에서 세일즈 미팅을 마치고 비행기로 돌아오는 길에 분명해졌어요. 이 거래를 딸 수는 있겠다. 그런데 빌드아웃에 500만 달러가 들고, 수백 명을 채용해야 하고, 재무 수익은 불확실하다는 것.
내부적으로는 “Plan 32”라는 이니셔티브를 가동했습니다. 콜당 평균 비용을 36달러에서 32달러로 낮추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엑셀 모델상으로는 빈틈이 없었습니다. 연 10만 콜 × 절감 4달러 = 40만 달러 EBITDA × 6배 멀티플 = 240만 달러의 주주가치.
세상에서 돈 벌기 가장 쉬워보이는 곳은 엑셀 파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32달러를 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거기에 사업을 의존했다면 회사는 망했을 거예요.
결국 비-무선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바꿨습니다.
“누구에게 주행 차량 서비스를 팔까”가 아니라, “지금 우리 고객에게 또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답을 찾은 곳은 회의실이 아니라 매장이었습니다. 무선 통신사 매장에서 미스터리 쇼핑을 하고 직원 교육을 하던 두 사람은, 카운터에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브로셔를 반복적으로 보게 됩니다. 하나는 월 3달러짜리 도로 위 서비스. 다른 하나는 같은 월 3달러짜리 휴대폰 보험.
잠깐, 휴대폰 보험. 그게 도로 위 서비스보다 무선 서비스와 훨씬 더 시너지가 나는걸. 우리가 진입할 수도 있겠어
밖에서 보면 새로운 사업처럼 보였지만 채널 안에서 보면 결국은 인접 사업이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큰 점프처럼 보이죠. 완전히 다른 제품이니까. 왜 이걸 인수로 고려하느냐. 그런데 산업 안에 들어와 있으면, 통신사에서 우리가 피칭하는 대상이 정확히 동일한 마케팅 매니저예요. 똑같은 사람한테 파는 거죠.
같은 통신사, 같은 매장, 같은 청구 시스템, 같은 마케팅 매니저. 운영상으로도 유사했습니다. 둘 다 보험과 같은 구조였고, 고객이 문제가 생기면 콜센터에 전화해서 폰을 받거나 견인차를 받는 식이었습니다.
게다가 통신사 입장의 논리는 더욱 강력했습니다. 휴대폰 보험은 매출이기도 했지만, 이탈률(churn)을 줄이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폰을 잃거나 파손한 고객은 종종 통신사를 떠나려는 경향이 있었고, 보험은 그 고객을 시스템 안에 유지하는 장치였습니다.
답이 분명해졌습니다. 로드 레스큐가 진짜로 잡고 있는 것은 도로 위 서비스 비즈니스뿐 아니라, 무선 통신사의 동일 마케팅 매니저, 동일 청구 시스템, 동일 가입자 관계와 같은 무형의 자산이었던 것이죠.
인수한 지 4년, 첫 M&A에 나서다
1999년 1월, 로드 레스큐는 내슈빌의 메리맥 그룹(Merrimac Group)을 약 800만 달러에 인수합니다. 휴대폰 보험을 운영하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인수 금액은 당시 로드 레스큐 기업가치의 단 18%.
그게 중요한 포인트예요, 18%라는 게. 인수할 때 회사 전체를 베팅하면 안 돼요. 인수가 생각대로 안 되면 본체까지 무너지니까. 제 경험칙으로는 기업가치의 20 - 25%가 최대치입니다.
협상은 내슈빌 유니언 스테이션 호텔에서 마무리됐습니다. 매도자가 “이게 최종 가격이고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타윌과 엘리스는 잠깐 시간을 달라고 한 뒤 호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가격은 공정하다. 딜을 한다.”
격론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위해 20분을 기다린 뒤 방을 나가 최종 인수 가격에 동의합니다.
메리맥 인수 직후, 두 사람은 결정적인 발견을 합니다. 고객이 휴대폰 보험으로 내는 월 3달러 중,
약 0.5달러는 통신사가 청구 대행 수수료로 가져갔고
약 0.5달러는 메리맥이 프로그램 관리 수수료로 가져갔고
나머지 2달러는 하트포드·취리히 같은 보험사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로드 레스큐가 고객 접점을 관리하고, 운영 프로세스를 통제하고, 데이터를 보고 있었는데, 정작 가장 큰 경제 가치는 보험사로 가고 있었던 겁니다.
이때 보험 분야 전문가의 조언이 주효했습니다.
직접 보험사를 차릴 필요가 없다. 보험 라이선스는 “빌릴” 수 있다.
라이선스 보유 보험사에게 수수료를 주고 정책을 발행하게 한 뒤, 실질적인 인수 리스크와 경제 가치는 자기들이 가져가는 캡티브(captive) 구조였습니다.
1999년, 로드 레스큐는 캡티브 보험 자회사를 설립합니다.
타이밍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은 무선 통신이 더 이상 부유층의 사치품이 아니라 모든 가정의 필수재로 전환되는 변곡점이었습니다. 미국의 무선 가입자는 1993년 1,600만 명에서 1999년 8,600만 명으로 증가했고, 곧 1억 명을 넘게 됩니다. 그 모든 가입자가 매장에서 새 폰을 사고, 각 매장에서 월 3달러짜리 휴대폰 보험을 구매할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로드 레스큐는 그 흐름의 중심에 정확히 서 있었습니다. 통신사들과의 거래 관계, 청구 시스템 통합, 매장 채널, 그리고 이제 캡티브 보험을 통한 가치사슬 통제까지.
2000년 말 매출은 $79Mn, EBITDA는 $25.3Mn 이었습니다. 1995년 인수 당시 “2000년에 매출 $15Mn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벌써 5배가 넘는 수치에 도달한 것입니다.
차량 견인과 통신 보험이라는 작은 틈새 시장에서 출발한 회사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순간 가치사슬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며: 1→10, 다시 10→100으로
아슈리온은 미국에서 워낙 유명한 회사입니다. 아마존이나 베스트바이에서 전자기기를 사면 결제 직전에 거의 반드시 “아슈리온 보호 플랜을 추가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미국은 제조사 A/S가 거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휴대폰이든 노트북이든 한 번 고장 나면 소비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합니다. 그래서 아슈리온은 사실상 필수 서비스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아슈리온의 초기 성장 과정을 결과론으로 보면 너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무선 통신이 개화하던 시점에 그 채널 위에 올라타 있었다. 운이 좋았다. 그럼 그렇지.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이 글을 마무리하며 자꾸 머릿속에 남는 장면은 산업 트렌드가 아닙니다.
30대 초반의 남자 두 명이 비용을 아끼려고 엠버시 스위트 호텔 방 하나를 같이 쓰는 모습.
인수 직전 두 달 동안 매도자 옆에 앉아 장부 비용 항목과 고객사들을 하니씩 따라가 보는 모습.
MBA에서 배운 대로 임원들을 모아 “전략 계획을 세워봅시다”라고 했더니 며칠 후 “전략 계획이 뭐죠?”라고 되묻고는 퇴사하는 장면.
콜센터가 새벽에 작동하는지 확인하려고 손님을 가장해 직접 자사 A/S 센터에 전화를 거는 모습.
이게 진짜 비즈니스 ‘실행’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서치펀드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수의 첫 몇 년도 결국 이것이었다는 사실이, 저는 더 신기합니다.
Acquired 시리즈를 통해 인수창업을 “제로에서 시작하지 않고 1에서 100을 만드는 이야기”로 정의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편이 1에서 10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다음 호는 10에서 100을 만드는 과정을 다루고자 합니다. 자본의 무게가 달라지고, 인사의 기준이 달라지고, 의사결정의 속도가 달라지면서, 매출 100억 원도 안되는 회사를 인수한 두 사람이 어떻게 직원 30,000명짜리 글로벌 조직을 이끌게 되었는지. 다음 호를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도 아슈리온과 같은 인수창업·서치펀드 사례가 가능할까요? 아직은 초기 단계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 모이고, 대화가 쌓이고, 다양한 사례가 시도되는 중입니다.
지난 5월 밋업 이후로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밋업, 소규모 라운드테이블, 실제 서치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많은 기대 바랍니다.
👉 알림 등록하기 — 하반기 이벤트·프로그램 소식을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오피스아워 신청하기 — “기업을 인수해서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보셨다면,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