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펀드(Search Fund)의 시작
최근 미국 MBA 졸업생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커리어 중 서치펀드(Search Fund)라는 것이 있습니다. 졸업 후 1~2년간 자신이 인수하여 경영하고자 하는 기업을 찾고, 인수 후 직접 CEO가 되어 기업을 성장시키고, 5~7년 정도 지나면 회사를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사업 + 투자 + 커리어’가 종합된 도전입니다. 1인 사모펀드를 세워 하나의 기업만 인수하는 형태이다 보니 마이크로PE의 변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서치펀드는 크게 네 가지 단계를 거쳐 기업을 인수, 경영, 매각하는 일종의 투자 및 경영 방식입니다.
탐색 단계: 투자자들로부터 약 5억 원의 자금을 조달, 최대 2년의 기간 동안 운영비로 사용하며 인수·경영할 기업을 탐색
인수 단계: 인수 대상 기업을 선정, 매각 협상 및 인수 자금 조달을 통해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
경영 단계: 직접 CEO로서 5년 이상 기업을 경영하며 성장을 견인
매각 단계: 회사를 매각하거나 지분 재자본화를 통해 투자자들의 자금 회수를 돕고, 서치펀드 매니저 또한 니즈에 따라 은퇴하거나 경영을 이어감
서치펀드의 유래는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였던 어빙 그로스벡(Irving Grousbeck)이 처음 도입한 개념입니다. 어빙은 학생들에게 기업 인수를 통해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하고자 하였으며, 졸업 후 실제 경영 경험이 부족한 MBA 졸업생들이 중소기업을 인수·경영할 수 있도록 자본을 모으는 방법을 설계하였습니다. 이론적 지식을 실제 경영 활동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일종의 기업가 정신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셈이죠.
서치펀드의 기본 개념은 1인 또는 2인의 운영자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에 직접 참여하여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서치펀드 운영자는 주로 MBA 졸업생과 같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인재들이며, 기업 인수 후 실질적인 경영진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기업가 정신을 마음껏 펼치게 됩니다.
어빙은 1964년 자신이 설립한 케이블 회사 컨티넨탈 케이블비전(Continental Cablevision)을 매각하며 억만장자가 된 인물입니다. 지금은 NBA 팀인 보스턴 셀틱스의 구단주로도 잘 알려져 있죠. 어빙은 1980년 대표이사를 사임한 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공적인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서치펀드라는 개념을 고안하게 됩니다.
이후 1985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으로 자리를 옮긴 어빙은 본격적으로 서치펀드를 활용한 기업가들을 적극 후원하며 서치펀드의 대부로 자리매김합니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은 지금도 기업가 정신 연구 센터(Center for Entrepreneurial Studies)를 통해 서치펀드에 대한 교육 및 멘토링, 연구 및 조사를 전담하는 산실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서치펀드 성공 사례
Case 1. Asurion
미국의 아마존과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서 전자제품을 구매할 때면 별도로 제품에 대한 보험을 가입할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국가에서는 전자제품 분실이나 파손에 대비하여 제조사 보증과 별개로 사설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Asurion은 이 테크 보험 분야의 전 세계 1위 기업입니다. 미국 테네시에 본사를 둔 Asurion은 2003년 한국에도 진출, 통신사와의 제휴를 통해 휴대폰 보험 상품 및 스마트폰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17개국에 진출한 Asurion은 여전히 비상장 기업이며, 연간 매출은 10조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Asurion의 시작은 서치펀드였습니다. 1992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어빙의 수업을 듣고 서치펀드를 시작한 두 명의 졸업생, 케빈 타윌(Kevin Taweel)과 짐 엘리스(Jim Ellis)는 졸업과 동시인 1993년 자신들의 서치펀드를 시작합니다. 어빙의 멘토링을 받으며 미국 전역에서 인수 대상을 물색하던 둘은 1995년 테네시 지역에서 사고차량 견인 서비스를 제공하던 Road Rescue를 인수하게 됩니다.
보다 효율적인 견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무선통신 사업자들과 적극적으로 파트너십을 맺던 Asurion은 이후 통신사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던 보증보험 서비스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합니다. 1999년 모바일폰 관련 보증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던 The Merraimac Group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공격적인 M&A와 해외 사업 확장을 통해 사세를 키워가던 Asurion은 2006년 버크셔 파트너스(Berkshire Partners)와 같은 사모펀드들로부터 외부 자금 유치를 시작합니다. 이후 몇 차례의 자본 재조정과 사모펀드의 손바뀜을 경험하였지만, 지금도 서치펀드를 통해 처음 회사를 인수하였던 케빈 타윌이 CEO를 맡아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서치펀드의 세계로 이들을 인도했던 어빙 또한 사업 초기 Asurion의 이사회에 참여하며 회사의 성장을 뒷받침한 바 있습니다.
Case 2. EggCartons
유명 팟캐스트이자 유튜브 채널인 My First Million에 소개되며 화제를 모은 EggCartons의 이야기는 사실 대표적인 서치펀드 인수 성공 사례입니다. EggCartons는 2016년 하버드 MBA를 졸업한 사라 무어(Sarah Moore)가 서치펀드를 시작, 1년 반 동안의 탐색 과정을 거쳐 2017년 12월 인수에 성공한 후 지금까지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입니다.
최근 외부 투자 없이 사업을 전개하는 부트스트랩, 그리고 ‘월 천만 원 벌기’와 같은 키워드가 유행하면서 EggCartons과 같은 사례도 ‘무일푼으로 기업 인수’, ‘30대에 계란 포장지 팔아서 500억 매출 기업 오너’와 같은 수식어가 먼저 주목을 받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치펀드의 방법론과 프레임워크에 대한 이해가 필수입니다.
서치펀드 창업자가 인수할 기업을 찾는 방법은 그야말로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방식입니다. 과거 TA Associates와 같은 그로쓰 에쿼티 기업들이 갓 대학을 졸업한 애널리스트들에게 전화번호부를 던져주고 매년 수천 곳의 중소기업에 콜드콜을 돌리며 회사 사정을 파악하고, 오너에게 은퇴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던 ‘탑다운’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라 또한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를 통해 50명의 무보수 인턴을 고용, 미국 전역의 수천 곳에 연락하며 인수 대상 기업을 찾았다고 합니다. 서치펀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꼭 맞으면서도 20대 후반의 MBA 졸업생이 운영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적이고 단순한 비즈니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치펀드가 찾는 기업의 전형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높은 반복 매출 비중
검증된 현금 창출력
비즈니스 외적인 요인에 따른 매각 의지 (은퇴 등)
300억 원 이상의 매출
20억 원 이상의 EBITDA
다양한 추가 성장 동력
탄탄한 중간관리자 보유
외부 인수자금 조달이 가능한 사업 구조
합리적인 기업가치
3~6년 내 매각 가능한 현실적인 회수 전략
서치펀드 성공의 핵심은 좋은 사업을 찾아내어 이를 더 우수한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스타트업의 접근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입니다. 때문에 무려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가장 적합한 인수 대상을 찾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서치펀드 창업가의 일반적인 접근법입니다.
이런 접근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수십만 곳의 우량 중소기업이 전국 각지에 퍼져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중소기업들은 홈페이지도 없고, 직접 거래하는 곳이 아니라면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곳이 많습니다. 사라가 인수한 ‘계란 박스’ 납품 사업처럼 직관적이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사업의 길목에 자리를 잡으면 꾸준히 현금을 창출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은 서치펀드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수 후보가 되는 것이죠.
서치펀드 모델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축적의 시간: The Beauty of Doing One Thing for a Long Time
사업을 통해 부를 이룬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성공 비결은 결국 단 하나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축적의 시간’을 통해 자본의 가치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이죠. 핵심은 단 하나의 기업에 집중하는 노력과 시간입니다. 일만 시간의 법칙이 이야기하듯,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왕도란 없습니다.
단일 영역에서 자신만의 강점을 길러내는 것처럼, 서치펀드 또한 작지만 강한 기업, 그러나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하여 최소 5년 이상의 경영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서치펀드 성과 통계에 따르면, 10배 이상의 회수 성과를 기록한 성공 사례의 경우 평균 9.9년의 운영 기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서치펀드를 통해 인수한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 최소 5년 정도의 운영 기간을 가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틈새시장에 자리잡아 큰 부침 없이 이어지는 중소기업의 조직을 바꾸고, 동기를 부여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여 매출 성장으로 이끌기까지 최소 3년 이상의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서치펀드의 멘토들이 하나같이 인정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모델은 나이가 어려 사고가 유연하고, 충분히 공격적으로 인생에 베팅할 수 있고, 성공에 대한 열망이 높으면서도 분석적 업무에 잘 훈련된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인재들에게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나이로 차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이 생기고 나이가 들수록 사업에만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30대 중반을 넘길 경우 서치펀드 커리어를 추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소유와 경영의 일치 — Be Your Own Boss
사모펀드는 일종의 지배 구조 모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의 지배 구조를 바꾸고 소유와 경영을 일치시켜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자원을 재분배하여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과를 개선하는 것이 사모펀드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반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서치펀드는 이러한 사모펀드 구조의 극단적인 형태입니다. 사모펀드가 여러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며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반면, 서치펀드는 단 하나의 기업에 모든 사활을 거는 구조입니다. 사모펀드는 펀드 조성을 통해 관리보수를 수취하며 투자 성과와 관계없이 월급을 가져갈 수 있지만, 서치펀드의 운영자는 기업을 인수하는 순간 기업의 오너가 되어 회사에서 월급을 가져가게 됩니다. 말 그대로 관리자가 아닌 기업의 ‘오너’가 되는 것이죠.
서치펀드를 통해 기업을 인수한 뒤 성공적으로 회수까지 완료한 30대 후반의 기업가는,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는 7년 동안 단 하루도 헬스장을 찾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이 곧 자기 자신이 되었을 정도로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서치펀드 운영자가 큰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회사를 성공적으로 매각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투자로 시작했지만 기업을 인수하여 경영자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자신의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회사를 성장시켜 지분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란 점을 깨닫게 됩니다. 게다가 서치펀드가 기업을 인수할 때는 상당한 레버리지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항상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사업을 운영하며 성과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서치펀드의 필연적인 운명인 셈입니다.
기업가는 만들어지는 것 — Managing Growing Enterprises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조스, 마크 저커버그 등 자신이 창업한 기업을 수 조 달러의 기업으로 키운 창업가들을 보면, 창업가란 타고나는 것인지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지 논쟁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치펀드의 개념을 정립한 어빙은 단언합니다. ‘창업가’는 타고날 수 있지만 ‘기업가’는 끊임없는 시행착오와 실전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서치펀드라는 개념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을 기업의 오너로 지원하는 이유 또한, 일정한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성공적인 기업가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서치펀드 이론을 정립한 어빙 그로스벡, 어빙과 함께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의 기업가 정신 커리큘럼을 일군 조엘 피터슨(Joel Peterson), 서치펀드를 통해 Asurion을 시작한 케빈 타윌과 짐 엘리스, 서치펀드 모델을 발전시켜 자신의 사모펀드에 접목한 알파인인베스터(Alpine Investors)의 그래햄 위버(Graham Weaver)는 모두 스탠포드 대학에서 현역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담당하는 과정은 단 두 가지 주제를 다룹니다.
이들은 기업 경영이 복잡한 이론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경영을 한다는 것은 기업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이슈를 해결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이를 잘 해내는 방법은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을 미루지 않고 사람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가장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기업가 역량을 가르치는 해당 과정들은 지금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종의 투자 형태로 보이는 서치펀드의 근간에는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갖출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고의 경영대학원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갖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단순히 교실에서 이론을 학습하는 것이 아닌 직접 사회에 나가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 조직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닌, 곧바로 기업을 인수하여 CEO가 되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바로 서치펀드가 가진 진정한 의미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