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italEDGE Acquired — 기업을 인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서치펀드, 인수창업, 마이크로PE, 많이 들어는 봤는데 한국에서도 과연 가능할까요? CapitalEDGE Acquired와 함께 그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CapitalEDGE입니다.
인수창업-서치펀드 시리즈 첫번째 이야기로 우버 출신 쿠날 파스리자가 서치펀드를 통해 회사를 인수하고 직접 CEO가 된 이야기,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로 벤 호로위츠와 일할 기회를 박차고 나와 서치펀드의 여정을 시작한 마이크 스메클로의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입니다.
저스틴 마제카 보그트(Justin Mazeka Vogt). 일리노이 주 인구 수천 명에 불과한 작은 농촌 마을 출신. 노트르담 학부를 졸업하고 베인캐피탈에서 투자 실무를 거쳐 스탠포드 MBA를 마친 인물이 졸업 후 선택한 길은 컨설팅도, 빅테크도, 벤처캐피탈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절대 팔지 않을 회사를 사서 운영하는 것”이었죠.
저스틴은 동기 에드 레든(Ed Redden)과 함께 2020년 영구 자본(Permanent Capital) 기반의 홀딩컴퍼니 에버모어 인더스트리즈(Evermore Industries)를 설립하고, 2022년 초 AI 기반 워크플레이스 센서 기업 어뷰이티(AVUITY)를 인수합니다. 현재는 이사회에서 직접 경영에 참여하며, 팀 규모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저스틴이 선택한 구조가 전통적인 서치펀드와 미묘하게 다르다는 점입니다.
농부들의 마을에서 배운 것
저스틴의 이야기는 화려한 출발점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일리노이 주 남부의 작은 농촌 마을. 마을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대기업 임원이나 창업자가 아니라 대대로 농사를 이어온 가문들이었습니다.
Think Like an Owner 팟캐스트에서 저스틴은 이렇게 회고합니다.
50년, 100년, 150년에 걸쳐 옆 땅을 하나씩 사들이고, 좋은 장비를 적절한 시기에 확보하고, 가족 구성원이 사업을 이어가도록 만든 농가들이 마을의 기둥이었습니다. 리틀리그 야구팀을 후원하고,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 그런 사업체를 만든 사람들이었죠.
이러한 경험이 저스틴의 사고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좋은 사업은 3 - 5년 안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세대에 걸쳐 복리로 쌓인다는 확신. 대학 졸업 이후 3년간 일한 베인캐피탈에서 하이일드, 부실채권, 스페셜 시추에이션 투자를 담당한 저스틴은 망가진 회사들을 관찰하며 자신의 비전에 대해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저스틴은 투자 펀드가 가진 단기적 시간 지평선이 자신이 자란 마을에서 본 성공 방정식과 정반대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에게는 우리 가족을 위한 가문의 사업 (generational endeavor)을 시작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드는 것, 그게 사업이 커지는 방법이고, 진심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을 만드는 방법이니까요.
스탠포드 서치펀드 클럽, 그리고 에버모어 인더스트리즈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저스틴은 같은 노트르담 출신인 에드 레든을 만납니다. 에드도 비슷한 백그라운드에 중소기업을 인수해서 직접 운영하고 싶다는 관심사도 일치하였죠. 결국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스탠포드 서치펀드 클럽을 공동 창립합니다. 20회 이상의 행사를 열고, 서치펀드 생태계의 투자자·서처·경영자를 만나며, 자신들만의 구조를 설계해 나갑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전통적인 서치펀드와 조금 달랐습니다.
전통적 서치펀드는 인수 → 경영 → 엑시트(매각)의 사이클입니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주기 위해 5~7년 후 회사를 매각하죠. 저스틴과 에드는 여기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잘 되는 회사를 굳이 팔아야 하는가?”
2020년, 두 사람은 에버모어 인더스트리즈(Evermore Industries)를 설립합니다. 이름부터 의도가 드러납니다. ‘Evermore’ — 영원히. 매각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영구 자본 홀딩컴퍼니입니다.
투자자를 모으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들 갸우뚱했습니다.
‘우리가 뭘 살지 아직 모르고, 자본을 돌려줄 계획도 없고, 이걸 수십 년간 복리로 키우는 게 목표이고,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가는 겁니다’
이런 제안에 모든 사람이 열광하진 않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까다로운 조건이 자기선별(self-selection) 도구로 작동합니다. 같은 시간 지평선을 가진,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투자자들만 남은 것이죠. 저스틴은 투자자 선별 기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사람 이름이 전화 화면에 떴을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받고 싶은가? 앞으로 20년, 30년 이상 그 사람과 함께 가도 좋은가? 그 대답이 ‘Yes’가 아니면, 우리와 맞는 투자자가 아닙니다.
AVUITY 인수, “매각 계획은 없습니다”
에버모어 인더스트리즈의 첫 인수 대상은 AVUITY였습니다. 2022년 초 딜이 클로징됩니다.
AVUITY는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에 본사를 둔 워크플레이스 점유율(Occupancy) 모니터링솔루션 기업입니다. 사무실의 각 공간인 책상, 회의실, 로비 등 곳곳에 AI·머신러닝 기반 센서를 설치해서 “이 공간이 실제로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를 데이터로 보여주는 서비스입니다. 온도, 습도, 조도, 소음까지 환경 데이터도 함께 수집하죠.
팬데믹 이후 하이브리드 워크가 확산되면서, “우리 사무실 공간이 실제로 얼마나 활용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상업 부동산 업계 최대 화두가 되었습니다. AVUITY는 정확히 그 문제를 풀고 있었죠. 전 세계 수천만 평방피트의 사무공간을 측정하고 있는, 업계에서 가장 큰 센서 설치 기반을 가진 기업입니다.
인수 당시 AVUITY CEO 브래드 존슨(Brad Johnson)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이브리드 워크의 부상과 사무실 복귀(RTO, Return to Office) 흐름이 우리 사업에 폭발적 성장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에버모어 인더스트리즈와의 파트너십이 모든 사업 운영의 스케일업과 기술에 대한 추가 투자를 도울 겁니다.
저스틴과 에드는 인수 후 직접 경영에 참여합니다. 저스틴이 재무와 사업개발을, 에드가 운영을 맡았습니다. 기존 CEO는 유임. 이후 1년 만에 팀 규모를 2배로 키우고, 꾸준히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에버모어 이후, 본격화되는 Long Term Hold 모델
저스틴과 에드가 에버모어를 설계할 때만 해도, “매각하지 않는 서치펀드”는 아직 이름조차 없는 실험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서처들이 늘어나면서, 이 접근은 하나의 모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2024년, 스탠포드 GSB는 이 흐름을 공식적으로 정리한 케이스 브리핑을 발표합니다. 제목은 “Long Term Hold(LTH)”. 서치펀드가 어떻게 장기 보유 모델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개괄한 문서입니다.
스탠포드가 정의한 LTH의 핵심 특징은 전통적 서치펀드와 분명하게 대비됩니다.
전통적 서치펀드가 인수 자금을 딜 단위로 조달하고 5~10년 내 엑시트를 목표로 한다면, LTH는 설립 시점에 약 200~350억 원 ($15~25M) 규모의 출자 확약(committed capital)을 확보하고, 이사회 승인 하에 4~6년에 걸쳐 복수의 인수에 투입합니다.
보유 기간은 최소 10~20년. 투자자 수익 기준도 IRR이 아닌 Net ROI(순 투자원금 대비 수익률)로 측정합니다. 즉, 빨리 사고 빨리 팔아 IRR을 높이는 게 아니라, 오래 보유하며 절대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인 것이죠.
이후 자체 현금흐름과 부채만으로 추가 인수를 이어가는 자본 효율 전략을 추구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 빠르게(go-slow-early to go-fast-later)”가 기본 원칙이죠.
스탠포드 기업정신연구소는 LTH의 주요 형태를 두 가지로 분류합니다. 하나는 특정 산업 내에서 여러 기업을 인수해 하나의 운영 체제로 통합하는 수직 통합형(Vertical Consolidator), 다른 하나는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산업의 기업들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수평적 홀딩컴퍼니(Horizontal Holdco)입니다. 에버모어 인더스트리즈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케이스의 마지막 문장이 의미심장합니다. LTH는 아직 “태동기이며 진화 중인 개념”이라는 것. 하지만 에버모어처럼 이 모델을 실행에 옮긴 사례가 하나둘 쌓이면서, 서치펀드 생태계 전체가 “반드시 엑시트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영구 자본’을 전면에 내세운 시도들이 등장하고 있죠. 과연 이러한 실험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낳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수창업과 서치펀드, 형식의 오류를 경계해야
인수창업과 서치펀드는 하나의 모델이 아닙니다. 인수와 매각을 전제하는 전통적 서치펀드, 홀딩 컴퍼니, 영구 자본 기반 펀드, 셀프 펀딩 서치 등, 같은 ‘인수창업’이라도 구조와 시간 지평선은 천차만별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처가 발굴한 기업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넥스트코스트벤처스 (Next Coast Ventures)와 같은 곳도 있고, 알파인 인베스터(Alpine Investors)처럼 서치 과정 자체를 건너뛰고 포트폴리오 기업의 CxO로 젊은 인재를 직접 투입하는 피플 퍼스트 전략을 내세운 사모펀드도 있습니다. 모델의 스펙트럼은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변주 속에서도 절대 변하지 않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1) 복리의 효과를 누리겠다는 장기적 시간 지평선. 2) 새로운 ‘기업가 정신’을 도입해 회사의 성장 경로를 다시 그린다는 것. 그리고 3) Good to Great, 이미 좋은 기업을 심사숙고하여 발굴하고 인수하여 더욱 좋은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 이 세 가지는 어떤 변형 모델에서든 공통 분모입니다.
그럼 다음 호에서는 이 변하지 않는 서치펀드의 핵심, 즉 모델이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는 원칙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밋업 안내: 5월 첫 오프라인 밋업, 참가 등록이 열렸습니다
지난 2주간 보내주신 관심 덕분에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수창업과 서치펀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다뤘듯, 인수창업과 서치펀드에서 중요한 건 구조의 형식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원칙입니다. 어떤 모델을 택하든, 결국 핵심은 좋은 기업을 찾아 더 좋은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을 직접 이끌겠다는 결심이죠. 첫 밋업에서는 이 원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질문, “기업을 인수한다는 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인가”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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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pitalEDGE의 새로운 섹션을 소개합니다: Acquired
CapitalEDGE 뉴스레터에 Acquired 섹션이 새롭게 추가됩니다. Acquired는 ‘기업을 인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란 주제를 바탕으로 전 세계 서치펀드와 인수창업과 관련한 가장 최근의 사례들을 다루는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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